당문이 독과 암기의 대명사가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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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문의 제자 이천록(李千禄)이 쓴 [개현당문고(开县唐门考)]에서는 개현의 당가권(唐家拳)이라 말이 나오고, 지금도 개현의 당가권이라는 곳이 존재한다. 즉 명나라 말기에 당문은 권법을 사용하던 문파인 것이다.

이후 청나라 건륭제 때는 개현의 당문이 암기의 하나인 죽표(竹镖)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당시 당가의 장문인 당천태(唐天泰)가 청나라 황궁의 경호원으로 고용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은퇴한 장문인 당천태는 개현의 당가권으로 돌아와 권법과 죽표 암기술을 가르치게 된다. 이후 현대까지 당가권은 권법과 죽표 암기술을 가르치는 곳이 된다.

권법가였던 당문의 이미지에 암기가 더해진 것은 죽표 암기술을 사용하면서부터다.

독에 관한 이미지는 근대에 와서 생성되었다.

만뇌성(万籁声)이 쓴 [무술휘종(武术汇宗)]에 따르면 오독으로 정제한 철사인 ‘오독신사(五毒神砂)’를 수행하는 사람도 있으며 3년 안에 완성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 오독신사장에 몸이 가격 당하면 몸이 마비되고 움직일 수 없으며, 고름과 피가 흐르고 치료할 약도 없다고 묘사되어 있다.

[무술휘종]은 1926년에 쓰인 책으로 이 책에 의하면 청나라 말기에는 사천당문(四川唐门)이 존재했다고 한다. 또한 ‘사천당대수(四川唐大嫂)’는 청말민초에 실존했던 인물이다. 이미 당대에 중국에서는 사천당문의 독약사용법이 널리 알려져 있는 상태였다. 이런 이유로 당문 하면 독약과 독장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물론 이런 이미지를 소설 속에 정립한 것은 무협소설가에 의해서다. 북파오대가(北派五大家)인 백우(白羽)는 ‘무술휘종’의 내용을 많이 인용해 작품을 썼는데, 그의 소설 [십이금전표(十二金钱镖)], [투권(偷拳)] 등에서 당문을 인용하여 확장했다. 개인이었던 당대수의 이야기를 당문 전체로 확장하고, 당문을 무협소설에서 주요 문파로 만든 것이다. 이후 중국의 무협작가들이 당문을 독과 암기의 문파로 정립하면서 지금과 같은 이미지가 형성된다.

실제로 존재한 당가권은 권법과 죽표만 사용할 뿐이고, 독장은 가르치거나 사용하지 않는다. 독에 관한 것은 소설에서 허구로 만든 이미지인 것이다.

어쨌든 실제 중국 무예 역사에는 당문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고 중요한 문파가 아니었지만, 무협소설에서는 많은 작가들이 당문을 인용하면서 당문은 무협소설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때문에 사천당문의 기원은 [무술휘종]의 언급에서 시작되며, 백우의 소설을 통해서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