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문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명나라 말기에 당문의 제자 이천록(李千禄)이 쓴 [개현당문고(开县唐门考)]다. 이 기록에 따르면 장헌충(张献忠)이 사천성으로 들어간 후 병사들이 사탕수수를 베어먹다가,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당문과 다툼이 일어났다고 한다. 일꾼인 줄 알고 싸웠지만 당문 사람이었고, 당문 사람에 당한 군사들은 도주한 뒤에 대장에게 상황을 보고한다. 도주한 군사들은 처벌을 받았으나, 그는 당씨에게 무예를 배우라고 청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청을 받은 당씨는 고향을 떠날 수 없어 지방의 무관으로 봉해졌고, 개현에는 이 당씨 무관의 묘비가 있고,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기록을 통해 사천당문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사천(현재는 중경)의 개현(开县, 현재는 중경시 개주구, 重庆市开州区)에 당문이 존재했고, 지금까지 당가권이라는 곳이 있어 당가권과 죽표 암기술을 계속 수련했던 곳이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사천당문의 식솔들은 사천성 공주(恭州, 현재의 중경지역) 대파산(大巴山)에서 대대로 살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권법과 암기술을 가르치는 당가권은 개현에서만 확인이 되었다. 당씨 성을 가진 일족은 사천성 곳곳에 퍼져 살았지만 권법과 암기술을 할 줄 아는 당가권은 개현에만 있었고, 지금까지도 개현에서 무공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