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武俠)에서 ‘무’의 뜻은 누구나 안다. 무기라는 뜻이다. 그래서 무기를 다루는 사람을 ‘무인, 무사, 무관’이라 부르고, 기술은 ‘무예’ ‘무술’이라고 부른다. 무(武)라는 글자 자체가 백병지왕이라는 ‘창’에서 유래한 글자다.
주인공의 활약을 그린 ‘탐정소설’ ‘추리소설’은 탐정이라는 직업이나, 주요 능력으로 장르이름을 삼았다. 이런 식이라면 ‘무사소설’ ‘무예소설’이라는 장르명이 적합할 것 같은데,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는 ‘무협’이라는 낱말을 장르명으로 삼았다.
왜 직업인 ‘무사’도, 능력인 ‘무예’ ‘무술’도 아닌 ‘무협’일까? 도대체 ‘협’의 뜻은 무엇일까?
‘협’의 뜻에 대해서 연암 박지원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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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으로 남을 구하는 것을 협(俠)이라 하고, 재물로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을 고(顧)라고 한다. 협과 고를 겸하는 것은 ‘의(義)’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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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무협’이라는 장르에는 ‘협’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뜻이고, 이 말은 남을 구하는 것이 소설의 주제여야 한다는 뜻이다.
주인공이 힘(무공)을 이용해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소설인 경우, ‘무협’이라 부를 수 없다는 뜻이다.
‘무협’의 주인공은 ‘힘으로 남을 돕는 주인공’이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무협의 초기 정의인 것이고, 지금은 다양한 주제를 가진 무협소설이 등장하고 있다. 무협에 대한 정의 또한 변화하는 것이니 ‘남을 돕는 것이 무협’이라는 틀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협’의 해석에서 주의할 점은 ‘협’은 사회적 정의나 합법적 행위를 기준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협의 기준은 ‘자신의 가치관과 정의에 대한 해석’이다. 그렇기에 정파에만 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파에도 협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고, 관군에만 협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도적에도 협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자신의 가치관과 정의가 사회적 기준과 겹칠수록 더 호응을 얻는 것이고, 사회적 기준과 멀어질수록 호응이 줄어들 뿐이다.
‘삼국지’에서 관우가 조조를 화용도에서 놓아준 것은 관우의 기준에서 ‘정의’란 은혜를 잊지 않고 의리를 지키는 것이라는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촉에 해를 끼치는 행위임에도, 관우는 조조를 놓아주었는데, 이것이 ‘협’에 해당하는 행위다.
그런데 화용도에서 관우가 조조를 죽였어도 역시 ‘협’에 해당한다. 비록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은인이지만, 전쟁으로 고통받는 백성을 위해 조조를 죽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그것이 더 정의로운 행위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면) 판단하고 조조를 죽이는 것도 ‘협’에 해당한다.
관우와 달리 ‘읍참마속’에서 제갈량이 마속을 죽인 이유는 마속보다 백성과 군사를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무로써 남을 돕는다’에서 가장 먼저 도울 남이 ‘은인 조조’냐, ‘천하 백성’이냐는 관우와 제갈량의 가치관과 정의에 따르는 것이다.
‘수호지’를 협객소설의 원조로 평가하는데, 수호지의 양산박 호걸은 도둑이고, 사회적 기준으로 보면 안 좋은 일을 많이 저지른다.
그런데 그 소설을 협객소설로 보는 이유는 호걸들이 자신의 가치관에서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개를 잡아먹고 술 장수를 두들겨패 술을 빼앗아 먹은 노지심이지만, 의형제를 맺은 임충이 살해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임충의 목숨을 구해주고, 유배지까지 호송해주었기에 협객으로 보는 것이다.
이처럼 ‘협행’은 사회적 정의, 법률과 일치하는 일은 아니다.
다만 개인적 정의와는 일치해야 ‘협행’의 최소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자신을 도와준 은인이지만 백성을 위해 죽이면 ‘협’이 되지만, 상금을 노리고 죽이면 ‘불협’이 되는 것이다.
살인범이지만 은인이라는 이유로 숨겨주면 ‘협’이 되지만, 살인범 은닉자라는 손가락질이 두려워 은인을 신고하면 ‘불협’이 되는 것이다.
결국 ‘협’에서 힘으로 도와야 하는 ‘남’의 기준이 사회적 기준이 아니고 ‘개인적 정의’에 의한 기준을 따르기 때문에, 협행이 정말 정의로운 일인가에 대한 판단은 시대와 개인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는 대의를 생각해 읍참마속한 제갈량보다는, 대의보다 사적 의리를 지키기 위해 조조를 놓아준 관우를 신(관제묘)으로 섬기고 삼국지 최고의 인물로 꼽는다.
중국인들은 사회적 정의보다는 개인적 관계와 정의를 좀 더 중요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이 개인간의 꽌시(관계)문화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무협소설’에서 ‘협’의 맛을 살리려면, 적어도 주인공이 개인적 정의에 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남들에게 미친놈 소리를 듣더라도 주인공 스스로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밀고 나갈 때, 독자들은 무협이라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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