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삼봉, 장상품? 그는 무당파 조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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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삼봉(张三丰, 张三峰)은 중국의 도인으로 속성이 장(張)임은 기록이 일치하지만 본명과 자에 대해서는 말이 다르다. 이름이 전일(全一) 또는 군보(君寶)이며 호가 삼봉(三丰)으로 나오기도 하고, 이름은 군실(君實), 자는 전일(全一), 별호는 보화용인(葆和容忍)으로 나오는 기록도 있다. 그 외 이름이 통(通)이라는 이름 등 기록마다 조금씩 다르다. 도호는 장삼봉 또는 현현자(玄玄子), 원원자(元元子)라고도 한다.

[장삼봉인가? 장삼풍인가?]
한국에서는 장삼봉 또는 장상품으로 알려졌다. 명사에서는 장삼봉(張三丰)이라고 기록했는데, 이때 봉(丰)을 풍으로도 읽을 수 있다. 이는 봉(丰)이 풍요로울풍(豐)자의 약자로 쓰이기 때문에 때문에 장삼풍(張三豐)으로 쓰고 부르기도 한다. 중국의 경우 봉(丰) 봉(峰) 풍(豐) 세 글자의 발음이 같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장삼봉, 장삼풍 중 어느 것으로 써야할지 명확하지 않다. 드물게 장삼뢰(張三耒)라고 표기된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예쁠봉(丰)자를 쟁기뢰(耒)로 잘못 본 탓이다.


김용의 소설에서 무당파 개파조사로 언급되지만 이는 중국의 민간전설을 차용한 소설의 허구다. 섬서 화산에서 화룡진인의 제자가 되어 수행했으며, 무당산에 입산한 후 태극권을 창시해 '태극권의 창시자'또는 '권성(拳聖)'이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것이 설이다.

역사적으로 태극권은 진가구의 진씨 집안 가전무예라는 것이 정설이다. 무당파를 장삼봉이 세운 것 역시 허구다.

장삼봉에 대한 유일한 정사 기록은 명사(明史) 방기전(方伎傳)의 기록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장삼봉이 도법에 깊고, 권법 기예도 훌륭하다는 평이 나온다.

홍무(洪武 1368-1398) 17년에 태조(太祖)가 장삼봉을 불러오라 했으나 삼봉을 만나지 못 했다. 25년 후 그는 운남으로 도피했다. 건문(建文) 원년에 완박자(完璞子)가 무당의 삼봉을 만나고 기뻐했다. 영락(永乐) 4년에 시독학사(侍读学士) 호엄주(胡广奏)가 말하기를 ‘삼봉은 도법에 도통하고 권기가 절륜하다.’고 평했다.

(洪武 十七年,太祖诏求三丰不赴。二十五年乃遁入云南。建文元年完璞子访三丰于武当,适从平越归来,相得甚欢。永乐四年侍读学士胡广奏曰 三丰深通道法,拳技绝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