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은 섬서성(陝西省) 화음현(華陰縣)에 위치하는 산으로 화음현 서쪽에는 소화산(小華山)이 있어서 태화산(太華山)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중국 5악 중에서 서악(西嶽)에 해당하는 산인데, 화산의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험악’한 산이다. 화산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접하는 문구가 ‘기험천하제일산(奇險天下第一山)’이라는 문구일 정도다. 기이하고 험하기로는 천하제일이라는 뜻이다.
청나라 때 위원(魏源)은 ‘화산여립(華山如立)’이라 표현 했다. 산이 마치 마치 서 있는 듯하다는 뜻이다. 기암절벽이 수직으로 서있는 산이라 바로 이해가 되는 표현이다.
화산이 험산인 이유는 화산 전체가 하나의 통바위로 된 악산(바위산)이기 때문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화산 전체는 하나의 통바위다. 그래서 수 개 봉우리는 하나의 바위다. 약 1억 2,000만 년 전에 화산지역에 암장이 침투했고, 암장이 상승하면서 거대한 화강암체가 형성되었는데, 이것이 약 2,000만 년 전에 지표로 노출되면서 절리 현상이 발생해 현재의 화산 모양이 된 것이다.
화산의 통바위는 봉우리가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연꽃 같다. 그래서 역도원(酈道元)의 [수경주(水經注)]에는 "높이는 5천 길이나 되는데 깎여서 네모꼴이 되었고, 멀리서 바라보면 그 형상이 꽃(花)과 같다."는 표현이 나온다. 꽃처럼 생겨서 화산인데, 꽃화자는 화려할화와 같은 의미로 쓰던 글자였기 때문에 나중에 화려할화로 바뀐 것이다.
중화라는 말도 화산에서 딴 것이다. 중원(中原)의 중(中)과 화산의 화(華)가 합쳐져 ‘중화(中華)’가 된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 화산은 그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산이다.
중국 역사를 보면 화산을 중심으로 주변 300리가 삼황오제(三皇五帝)의 거주지로 나온다. 진시황제의 ‘황제’라는 말의 근원이 된 삼황오제가 화산을 중심으로 거주한 것이다. 화산이 ‘중화’의 뿌리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중원 천하를 통일한 황제는 반드시 화산에 오르거나 화산을 향해 제사를 지냈다. 고대 역사에서 56명의 황제가 화산을 순유하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물론 정상까지 오른 오른 황제는 한 명도 없다. 당시로서는 화산을 오른다는 것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화산이 얼마나 험하고, 황제가 왜 화산을 오를 수 없는지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의 문서로 확인해 보면 된다.
∞ Link 화산파 제자들이 경신술에 뛰어나야 하는 이유
최근 병마총이 발굴되면서 이 지역이 고대 중국에 얼마나 중요한 중심부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의 오악 중 서악인 화산은 중국에 오행사상이 퍼진 이후 정착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유교 경전 [이아(爾雅)]에 의하면 전국시대(BC 4~3세기) 때 오행사상의 영향으로 오악의 개념이 생겼다고 밝히고 있다. 국가 봉선제는 한(漢) 무제 들어서 시작했고, 한 선제 때 확정됐다고 했다.
화산에는 도교 동굴 72개와 도관 20여 곳이 곳곳에 있다. 화산 남봉 입구의 남천문(南天門)이 있고, 남천문 앞에 방이 하나 있는데, 총천일문(總天一門)이다. 총천일문이 천계(天界)의 경계라고 부른다.
주요 봉은 동봉 조양봉(朝陽峰, 朝陽臺), 서봉 연화봉(蓮花峰 혹은 부용봉芙蓉峯), 남봉 낙안봉(落雁峰), 북봉 운대봉(雲臺峰), 중봉 옥녀봉(玉女峰)으로 화산 전체가 하나의 통바위다. 서봉과 남봉 사이는 서로 이어졌는데, 폭1미터에 길이 300여 미터의 산등마루는 용척(龍脊)과 흡사하다 하여 ‘굴령(屈嶺)’ 또는 ‘창룡배(蒼龍背)’로 부른다.
서봉에는 서봉정전(西峯正殿)으로 부르는 취운궁(翠雲宮)이 자리 잡고 있다. 화산의 주봉은 남봉인데, 남봉에는 금천궁(金天宮)이 자리 잡고 있다. 그외 옥천원(玉泉院)과 진무궁(眞武宮) 등이 유명한 건물이다.
그외 도교사대동천(道敎四大洞天)이라고 하는 태극동(太極洞), 서현동(西玄洞), 노군동(老君洞), 왕자동(王子洞)이 있다. 그 외에 옥주봉(玉柱峯), 사자암(獅子岩), 운문(雲門), 청가평(靑柯坪), 비어령(飛魚嶺), 오리관(五里關), 이선교(二仙橋), 박대(博臺), 전진암(全眞岩), 삼공산(三公山), 남천문(南天門), 피정처(避靜處), 건원동(乾元洞)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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