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제가 소림사를 불태운 것은 사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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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강희제가 소림사의 힘을 두려워 해 팔기병을 보내 소림사를 불태우고, 100명이 넘는 소림승을 죽였다는 이야기는 모두 기록이 아닌 소문과 전설일 뿐이다. 소림승을 동원했던 명나라와 달리 청나라는 소림승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으며, 역사적 사료에 의하면 강희, 융정, 건륭 시대에 소림사를 태웠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오히려 강희43년에 강희제가 소림사에 ‘소림사’라는 편액을 새겼다는 기록만 있다.

세간에 알려진 소림사 관련 일화 중에 강희제의 소림사 공격 일화가 있다.

강희제가 소림사의 무승을 소집해 실력을 보고 감탄하면서 128명의 소림 무승을 장교로 선발해 서루(티베트) 원정에 참여시키고 큰 확얄을 한다. 승병이 공을 세우자 강희제는 소림에 후원을 보내는데, 이를 시기 질투한 간신들이 소림사가 반청복명 세력과 관련 있다고 모함하기 시작한다. 결국 강희제는 팔기병을 보내 소림사를 불태우고 100명이 넘는 소림승을 죽였다는 일화다.

전설에 따르면 이때 살아남은 승려가 5명인데 이들을 소림오로라고 부르며, 이들이 몰래 강남으로 도암쳐 비밀조직을 세우는데 이것이 훗날 삼합회의 기원이 되는 조직이라고 한다. 또한 복건성에 세운 새로운 소림사를 남소림사라고 한다. 또한 영춘권 홍가권 등 많은 무술의 시조를 소림오로에서 왔다고 한다.

이러한 민간전승 설화는 이후 영화, 소설 등 다양한 매체에서 다양하게 활용되는데, 결론만 말하자면 이는 역사적 근거가 없는 허구다.

명나라는 물론이고 청나라 황실도 숭불정책을 펼치면서 불교계를 적극 지원했다. 특히 강희제(康熙帝)는 불교를 존중했고, 불경을 여러 언어로 번역하고 불경을 편찬했다. 자금성의 기록보관소에 따르면 [황심경]은 강희제가 직접 썼다고 할 정도로 불경에 관심이 많았다. 강희제가 제작한 심경은 자저궁 동쪽 경사로의 서고에만 수천 권이 보존되어 있는 중이다.

이는 소림사도 예외가 아니어서 소림사도 강희제의 혜택을 크게 받았다. 강희제와 소림사의 관계를 본다면 강희제가 소림사를 적극 후원했다는 기록만 남아 있다.

심시어 소림사 산문에 걸린 ‘소림사(少林寺)’라는 편액이 강희제가 하사한 편액이다. 1704년에 청나라 강희제 43년(1687년)에 강희제는 소림사를 방문하는데, 이때 소림승들의 부탁으로 붓을 들고 ‘소림사’라는 세 글자를 써준다.

당시 강희제가 소림사를 방문했을 때 일화를 보면 조금 과장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소림사 편액을 보면 상단에 '강희어필지보(康熙御笔之宝)'이라는 네모진 인장이 새겨져 있다. 모든 사람이 오가는 산문에 감히 황제의 인장을 가짜로 새길 수 없음을 감안하면, 소림사 산문에 걸린 편액 글씨는 강희제가 직접 적어준 글씨임이 분명하다.

이런 사료와 산문에 걸린 편액 등으로 볼 때 강희제는 소림사를 불태우기는 커녕, 오히려 소림사를 적극 후원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전설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강희제가 소림사를 불태워서 소림사가 청을 원수로 생각하며, 소림오로가 이후 중국 무술의 원류가 되고, 삼합회를 만든다는 전설에 환호하며 이 일화를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