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에서 스파이를 뜻하는 낱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스파이를 뜻하는 말 중에서 가장 오래된 낱말이자 일반 국민들도 가장 많이 사용하던 낱말은 ‘간세(奸細)’다. 당연히 내 초기 무협작품인 [17호 천재서생]에서도 ‘간세’와 ‘세작’ 두 낱말을 사용했다.
간세가 대중적인 낱말인 이유는 ‘간세지배(奸細之輩)’라는 사자성어가 있어서다. 간세지배는 남을 비방하거나 모함해 위험에 빠트리고,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무리로, 전쟁 중에는 적의 공작원, 평소에는 조정의 간신배나 회사를 횡령하는 간신배를 뜻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꼭 ‘스파이’라는 낱말로서 간세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적의 사주를 받은 간신배나, 회사를 위험에 빠트리는 간신배, 정치에서 우리 진영을 혼란에 빠트리는 무리 등도 간세로 표현했기에 과거에는 일상에서도 자주 쓰던 낱말이다.
삼국지를 보면 ‘동오에 사람을 보내 거짓으로 항복하는 척 하되, 안에서 간세가 대응해주고, 소식을 전달해야만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간세’는 ‘공작원’을 말한다. 적진에 오래 전부터 침투해 시중에 헛소문을 흘려 적과 적 국민을 기만하고, 테러 및 암살로 적진을 혼란시키거나, 돈으로 적의 고위층에 로비를 해서 아군에 유리하도록 결정을 내리게 하는 등의 혼란, 기만, 포섭, 회유, 파괴 활동을 하는 공작원을 뜻하는 말이다. 만화 ‘스파이패밀리’의 주인공 로이드 같은 사람으로 제일 활동폭이 넓은 낱말이다.
세작은 ‘정보원, 비밀요원’에 가까운 뜻이다. 전쟁 중이라면 적진을 정찰하는 정찰병, 평소라면 적진에 파견되어 적의 정보를 수집하는 정보수집원이나, 단기작전을 수행하는 간첩의 느낌이다.
삼국지를 보면 전함을 출진시키기 전에 ‘강에 있는 세작들을 탐지해서 유표에게 보고하시요.’라는 말이 있는데, 이때의 세작은 적의 정찰병을 말한다. 도적의 옷에는 색실로 바느질해서 도적을 구분하게 했는데, 이렇게 도적을 찾아서 아군에게 알려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세작이다.
그러니까 일본 닌자가 복면을 쓰고 적진에 침투해 지붕 밑에서 몰래 적의 회의내용을 엿듣거나, 비밀서류를 훔친다면 ‘세작’이 더 어울린다.
간자는 ‘사악하거나 간교한 자’를 뜻하는 일본말이다.
이 낱말은 한국어사전에도 없고, 중국어사전에도 없는 낱말로 [일본어대사전]에만 ‘칸쟈(奸者)’로 수록된 낱말이다. 즉 일본 애니 라노벨 수입과 함께 일본에서 수입된 낱말이다.
‘沈默は愚人の甲冑なり、奸者の城塞なり。(침묵은 어리석은 자의 갑옷이며, 간자의 성채니라.-사치다노반(幸田露伴)의 言語 중에서)’라는 문장은 일본에서도 유명한 문장이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중국인과 한국인을 ‘간자(奸者, 칸쟈)’ 또는 간인(姦人, 간진)으로 표현한다. ‘간진(간교한놈)=한국인’의 뜻이다.
▸ 간첩(間諜)은 현대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낱말로 영어의 스파이와 동일한 뜻이다.
▸ 첩자(諜者)도 간첩을 말한다. 당나라 육덕명이 “첩자(諜者)의 첩은 간첩의 첩이며, 지금으로 치면 세작이다”라 말했다. 즉 첩자 간첩 세작은 같은 말이다.
▸ 특무(特務)는 스파이 중에서 특수훈련을 받은 특수공작원에 해당. UDT처럼 적진에 침투해 암살, 납치, 적의 거점 파괴, 상륙지점 확보 등 특수업무를 하는 스파이들. 현대전의 특수부대 및 특공대. 참고로 이 용어도 일본에서 만들어진 용어다.
▸ 특공(特工)은 특무공작의 약어로, 비밀요원을 뜻함. 만화 ‘스파이패밀리’ 보면 주인공 로이드가 담배노점상으로 위장한 비밀요원인 프랭키에게 정보를 주고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렇게 신분을 숨긴 비밀요원이 ‘특공’이다.
정리하자면 ‘간세=위장공작원=스파이’가 비슷한 부류고, ‘첩자=간첩=세작=특무=특공=특공대’가 비슷한 부류다. 그런데 간자는 특정인 비하 일본어, 특무도 일본어라 권장하는 용어가 아니다. 간첩 첩자 특공 공작원은 현대 용어 느낌이라 쓰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무협에서 쓸 수 있는 것은 ‘간세, 세작’ 이렇게 압축된다. 두 낱말은 삼국지에도 나오는 말이고, 현대 중국어사전에도 스파이로 등재된 낱말이다.
많이 사용하던 간세는 못 들어본 낱말처럼 느껴지고, 잘 안 쓰던 세작이 익숙해진 이유는 한자시대가 저물고 게임시대가 되어서다.
[바람의 나라] 게임에서 ‘세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X세대로서는 처음 들어본 용어인 ‘세작’이 확 퍼졌다.
어쨌든 두 용어는 대충 아래처럼 쓰면 나쁘지 않다.
▸ 무림맹에 10년 전에 입맹해 간부에 오른 신분위장 마교 간첩 = 간세
▸ 정파 진영에 침투해 무기고 파괴, 헛소문 유포하는 마교 공작원 = 간세
▸ 무림맹 근처에서 술집주인으로 위장하고 소식 전달하는 마교 스파이 = 세작
▸ 무림맹 내부에 침투해 적의 회의내용을 엿듣거나, 요인암살, 적의 기밀서류 훔치는 스파이 = 세작
그러니까 조직 내부에 오래 전부터 잠입해 혼란을 일으키는 인물은 간세로, 외부에서 침투해 단기 공작을 하는 인물은 세작으로 쓰는 것이 좋아 보인다.
물론 ‘간세=세작’으로 대충 써도 상관없다. 웹소설에서 두 낱말을 고증해서 쓸 이유는 없다.
* ‘간세’는 일본어와 중국어 번역시에도 ‘스파이(スパイ)’로 번역되는 반면, ‘간자’는 일본어 번역 시 ‘표리부동한 사악 간교한자’로 번역되므로 ‘간자’보다는 ‘간세’를 쓰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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