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와 소비자, 작가에 대한 이해

URL: https://tanma.kr/data/abolish_fixedprice.html

도서정가제는 ‘악법’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악법이 맞다. 공정위에서는 담합해서 가격을 높게 유지하는 것을 금지시킨다. 그런데 책에 대해서는 판매자 담합으로 가격을 높게 유지해, 소비자가 싸게 살 수 있는 길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소비자가 비싸게 책을 사게 된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책의 생산자와 유통자는 이익을 더 얻게 된다는 뜻이다. 단통법이 시행되자마자 KT는 2014년 7,195억 원 적자에서 2015년 8,639억 원의 흑자로 돌아섰다. 단통법 시행 1년 만에 무려 1조5834억 원의 수익 증가로 바뀐 것이다. 소비자가 얻을 이익 1.5조 원이 통신사의 이익이 된 것이다. 2022년에 통신3사의 영억이익은 4조3835억 원으로 단통법 시행 전인 2014년의 1조6107억 원 대비 3배나 증가했다. 마찬가지로 도서정가제 역시 소비자가 손해를 보는 만큼 작가와 출판사 유통사는 이익을 얻기 마련이다.

가격 할인을 막는 법은 소비자에게 악법이지만, 책은 문화상품, 창작자보호라는 특성 때문에 도서정가제를 시행했다. 그 도서정가제에서 웹툰과 웹소설은 제외하겠다는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1) 도서정가제 폐지를 외치는 작가들

작가들은 회 당 100원이 싸다, 10년 동안 물가 오르는 동안 웹소설은 안 올랐다. 회 당 200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외친다. 작가라면 당연히 내야 하는 목소리다. 독자는 가격 올리는 것을 반대하고, 작가는 가격을 올려야 한다고 각자 소리를 내는 것이 맞다.

지금까지 ‘우리 가격 좀 내리게 해주세요.’라고 호소하는 기업은 없다. 그런데 도서정가제에서는 그런 부류가 나타나는 이상한 현상이 있다.

일부 작가는 100원 짜리를 10원에 싸게 팔자며, 도서정가제 폐지를 주장한다. 회 당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과 완전히 상반되는 주장이다. 웹소설의 가격 인상을 반대하는 이들은 작가일까 독자일까?


(2) 개정안의 문제

발의된 개정안은 ‘판매 촉진에 소요되는 비용 또는 가격 할인에 따른 비용 등을 합의 없이 저자 또는 출판사에게 부담시키는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을 신설’한다. 이 부분은 작가들이 막았어야 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아래처럼 바꾸어야 한다.

‘판매 촉진에 소요되는 비용 또는 가격 할인에 따른 비용 등을 저자에게 부담시키는 모든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을 신설’

제대로 바꾸려면 작가에게는 합의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비용의 부담을 금지시켰어야 한다. 그래야 예술인, 창작자 보호가 된다.

실제로 기존 종이출판사의 경우 책을 할인하면서 발생하는 이벤트 비용은 작가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 할인에 상관없이 권 당 작가에게 지불하는 금액은 변화가 없다.

정가 1만 원 짜리 책을 10% 인세로 계약할 경우 작가에게는 1권 당 1천 원의 인세를 지불한다. 이 책을 50% 할인해서 5천 원으로 할인 판매할 때도 작가인 내게는 정가의 10%인 1천 원을 지불했다. 출판사에서 내가 출간한 종이책을 할인판매한 적은 많았지만 한 번도 내가 받아야 할 천 원을 할인해서 받은 적은 없다.

이게 창작자를 보호하는 할인이다. 권 당 받는 인세의 변화가 없기 때문에, 할인율에 상관 없이 책이 많이 팔릴수록 작가는 이익을 본다.

그런데 합의에 따른 비용을 저자가 부담하는 경우에는 책이 많이 팔릴수록 작가는 손해를 본다.

100원 짜리 웹소설의 40%를 작가가 가져간다고 할 경우 작가는 조회수 1회 당 40원을 받는다. 만약 비용부담이 없다면 50원에 팔더라도 작가는 40원을 받는다. 하지만 비용부담을 한다면 50원x40%=20원을 받게 된다. 할인을 통해 두 배를 팔아 봐야 본전이다. 만약 할인율이 90%라면 10배를 팔아야 본전이다. 10배 이하로 판다면 작가는 엄청난 손해를 보는 것이다.

‘작가와 합의’가 보호막처럼 느껴지는가? 합의 안 하면 된다고? 그럼 플모(프로모션) 없이 웹소설을 팔겠다는 것인가? 플랫폼이 ‘을’이고, 작가가 ‘갑’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웹소설 프로모션 이벤트와 관련된 모든 비용은 유통사와 출판사에서만 부담하는 것으로 개정되는 것이 작가에게는 좋은 개정안이다.


(3) 프로모션에 대한 인식

할인하면 심해작에도 판매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작가들이 보인다. 학생작가도 있고, 졸업 후 바로 웹소설로 뛰어든 작가도 있기에 기업에 관한 이해도가 부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쇼핑몰의 물건은 수천 만 종류고, 홈화면에 넣을 수 있는 배너광고는 몇 개가 전부다. 홈화면의 광고 자리를 얻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네이버 타임보드의 경우 점심시간 노출 광고비가 1시간에 3천만 원이다. 그 말은 그 이상의 수익을 거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카카페, 네이버시리즈, 문피아의 경영자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월판매 10억인 잘 나가는 대작을 배너광고에 띄울 경우 매출이 5배 증가한다고 하자. 그럼 매출 10억인 대작을 광고 걸어서 50억을 벌 것인가? 아니면 매출 10만 원인 작품을 그 귀한 홈화면에 광고 걸어서 50만 원을 벌 것인가?

50억 벌 수 있는 자리에 50만 원 버는 광고를 걸 경우 그 경영자는 배임혐의로 고발당한다. 회사에 50억을 벌어줄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고, 돈 안 되는 특정 작가를 밀어주었다고 고발당한다.

어떤 경영자도, 마케터도 인기 없는 제품에 그 자리를 내주는 경우는 없다.

프로모션은 할인과 아무 상관없다. 좋은 광고자리는 무조건 회사에 가장 많은 매출을 가져올 수 있는 작품과 마케팅 전략으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내 작품 90% 할인해도 좋으니 프로모션 주세요’라는 부탁이 안 먹힌다는 뜻이다.

카카페, 시리즈의 배너 자리는 한정된 공간(자원)이다. 정가로 팔 건 할인가로 팔 건 그 광고 자리가 더 늘어나지는 않는다. 결국 그 자리가 심해작이 아닌 카카오, 네이버에 매출을 가장 많이 올려주는 작품에게 할당되는 것은 앞으로도 변함 없다.


(4) 할인율과 독자의 시간자원, 작가 수익의 관계

배너자리는 변함없으니 배너를 보는 소비자(독자)의 수도 변함없다. 결국 유일한 변수는 1인 당 구매금액이 될 것이다.

정가에 판매될 때보다 더 싸게 할인하면 독자의 구매수는 늘지 않을까? 맞다. 가격을 할인하면 구매수는 증가한다. 문제는 할인으로 인한 손해를 만회하려면 얼마를 더 팔아야 하는가다.

‘리디’의 메가마크다운은 할인율이 최대 90%나 된다. 2만 종이 참여했기에 할인을 많이 해도 노출 효과도 미미하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할인비용을 작가가 부담한다면 10원에 팔았을 경우 작가는 4원을 받게 된다. 정가로 팔 때보다 10배를 팔아야 본전이고, 10배 이하로 팔면 정가로 팔 때보다 손해가 난다.


리디북스 메가마크다운


이건 이벤트 기간만 따졌을 때 계산이다.

이벤트 후의 후폭풍까지 감안하면 결국 작가의 총수익은 크게 감소한다.

그 이유는 독자에게 주어진 시간자원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독자가 볼 수 있는 독서시간은 하루 몇 시간으로 한정되어 있다. 평소 하루 10편씩 보던 독자가 하루 100편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독자들은 경제적 자원이 아니라 시간 자원의 한계 때문에 연간 구매량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연간 3천 편을 읽는 독자가 가격이 싸다고 해서 3만 편을 구매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독자는 시간 자원의 한계 때문에 가격이 싸건 비싸건 3천 편 이상을 구매해 독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벤트 기간 중에 구매편수가 느는 것 같지만 이건 남은 11달 구매할 것을 당겨서 파는 것에 불과하다. 이벤트 기간만 보면 구매가 증가하지만, 연간으로 보면 독자의 구매편수는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 결국 할인이벤트는 독자의 연간 구매편수를 드라마틱하게 증가시키지 않는다. 독자의 구매금액만 감소시키는 것이다.

50% 할인하면 연간 3천 편 읽던 독자가 6천 편을 읽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독자의 독서시간이 4시간에서 하루 8시간으로 두 배로 늘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시간에 대한 상식이 있다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결국 할인은 독자의 총소비금액만 낮출 뿐이다. 당연히 총소비금액의 감소는 작가의 수익 감소로 이어진다.


지금까지 구절구절 설명했지만, 결론은 명쾌하다. 할인판매는 가격을 낮추는 것이다. 이는 100원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는 작가의 입장과 반대인 입장이고, 결국 가격할인은 독자의 총소비금액의 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작가의 총수익감소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도서정가제는 독자에게는 악법이지만 작가에게는 창작자보호를 위한 울타리 중 하나였다. 그 도서정가제에서 웹소설이 제외된다면, 다음으로 작가들이 지켜야 할 권리(울타리)는 합의 여부와 상관 없이, ‘모든 할인이벤트 비용의 작가 부담 금지’여야 한다.


* * *



• 도서정가제 • 도서정가제폐지 • 도서할인 • 리디 • 메가마크다운 • 발의 • 법안 • 웹소설 • 웹소설작가 • 웹툰 • 이벤트비용의 작가부담 • 창작자보호 • 프로모션 • 플모 • 할인이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