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웹소설작가에게 주어진 정의와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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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질문 ‘능력주의는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이 유명하다.

재벌2세로 태어난 것은 높은 출발선에서 출발하는 것이니 정의롭지 못 하고, 재벌2세도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해 재능과 노력으로 경쟁하면 정의로운가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재벌2세와 내가 농구로, 공부로, 노래로, 글쓰기로 경쟁하면 정의로운가? 사람마다 농구에 대한 재능은 다른데? 필력으로만 승부하는 것은 정의로운가? 글쓰기 재능이 다른데?

돈많은 자녀로 태어난게 정의롭지 못 하다면, 농구 못 하는 몸치인 것도 정의롭지 못 한 것은 아닌가? 글 못쓰는 사람과 같이 경쟁하는 것이 정의로운가? 백 년을 노력해도 조던, 르브론의 재능을 넘어설 수 없고, 재벌2세의 금전력을 넘어설 수 없는데.

마이클 샌델은 재능이라는 것 자체가 공정하지 않은 것이고, 운이라는 말을 한다.

공감한다. 돈 많은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도 운이고, 농구 잘하는 몸으로 태어난 것도, 근로자로 사는 것도 운이다. 글로 돈 버는 것도 운이고요.

2백년 전에 태어났다면 조던이 농구로 돈을 벌 수 있을까? 농구가 없는 시대인데. 극도의 내전과 가난으로 시달리는 아프리카에 태어났다면 농구 재능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샌델은 말한다.

‘재능은 내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행운의 결과’라고.

이 말에 공감한다. 물론 샌델이 이 말을 꺼낸 이유는 공동체정의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지만 그건 논외로 하자.

전세계 200개 나라 중에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고, 그 글이 독자에게 선택받으면 10원, 100원이라도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진 나라는 몇 나라 안 된다.

내가 어렸을 때 웹소설로 돈을 벌 수 있었을까? 웹도, 결제시스템도 없었는데. 20년 전 PC통신 시절에는 재능이 있어도 돈을 못 벌었다. 지금도 200개 넘는 나라의 글재주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1원도 못 번다. 문피아, 노벨피아, 네이버웹소설 같은 플랫폼은 최근에 생긴 것이고, 그나마 제대로 동작하는 나라는 몇 나라 안 된다.

나는 작년 12월에 웹소설을 처음 접했고, 문피아 등을 처음 접했는데, 딱 보는 순간 이건 내게 찾아온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웹소설로 돈을 버는 시스템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행운인 거다. 마치 농구라는 종목이 생긴 것처럼.

이 순간 한국에 살지 못 하는 수십억 명은 작가 출발선에 서지도 못 하고 탈락한 사람들이다.

먼저 시작한 기성 작가는 운이 좋아, 문카데미 선택된 사람은 운이 좋아, 공모전 당선자 운이 좋아, 제목 잘 지어서 유입 잘 먹은 작가 운이 좋아,...

맞다. 운이 좋은 작가들이다. 그러면 지금 이 순간 글 써서 1원도 벌 수 없는 나라에 있는 수십억 명의 사람에게 한국의 웹소설 작가는 얼마나 운이 좋은 작가일까?

한국의 작가는 수십억 명이 탈락한 높은 출발선에서 출발하는 작가들이다.

이미 우리는 그들보다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문피아와 노벨피아가 있어서 또 운이 좋은 작가다.

카카오페이지만 있다? 그러면 20만 지망생의 대다수는 시도조차 못 하고 탈락이다. 문피아가 없었다면 문피아 작가 5만 명 중에서 99%는 글 쓸 기회조차 갖지 못 할 것이다.

금강 대표의 업적은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투명한 시스템의 정립이고, 이것은 웹소설 지망생들이면 고맙게 생각해야 할 업적이다.

운이라? 문카데미 탈락자가 운이 나쁜 사람일까? 플랫폼 없는 수십억 명이 운이 나쁜 사람일까? 문카데미 탈락해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많은 운이 남아 있다. 문피아에서 여전히 도전할 수 있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니까.

남은 인생 수십 년 동안 몇 백 번이고 도전할 기회가 있다. 기회 자체가 없는 수십억 명에 비하면 우리는 지나치게 운이 좋은 사람이다. 제비뽑기 한 장도 못 가진 사람과 비교하자면 우리는 손 안에 수 백 개의 제비뽑기 종이를 쥐고 있는 셈이니, 수십억 명에 비하면 지나치게 불공평한 행운을 거머쥔 거다.

노력? 아침부터 저녁까지 건설현장과 공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노력을 안 해서 억대 연봉을 못 버나? 그냥 그 분들이 그 업종에서 일하게 된 것이고 그분들의 운이었을 뿐이다. 재벌2세로 태어난 것이 그들의 운인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속한 분야에서 정말 열심히 노력한다. 언젠가 자신에게 행운이 찾아오기를 기대하고, 희망하고, 꿈꾸며.

배우 오정세씨가 수상 소감에서 말한 이야기다.

“어떤 작품은 성공하기도 하고, 또 어떤 작품은 심하게 망하기도 하고. 돌이켜보면 제가 잘해서 결과가 좋았던 것도 아니었던 것 같고. 제가 못 해서 망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세상에는 참 많은 열심히 사는 보통 사람들이 많은거 같습니다. 그런분들을 보면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열심히 자기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분들에겐 똑 같은 결과가 주어지는 게 아닌 같아서.

그럼데도 불구하고 실망하거나 지치지 마시고 포기하지 마시고. 여러분들이 무엇을 하든 간에 그 일을 계속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책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탓이 아닙니다.

그냥 계속 하다보면은 평소에 똑같이 했는데 그동안 받지 못 했던 위로와 보상이 여러분에게 찾아올 것입니다. 저한테는 동백이가 그랬습니다. 여러분들도 곧 반드시 여러분만의 동백을 만날 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한국의 웹소설 작가라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전세계 70억 명보다 운이 좋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아직도 많은 운이 남아 있다. 저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다만 그 운이 어디 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는 것뿐이다. 오정세씨 말처럼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가다 보면 운 좋게 나를 기다리고 있던 운을 만날 수 있다. 그 확률이 몇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끊임 없이 공부하는 거다. 혹시 가다가 운을 발견 못하고 지나칠까 봐서, 공부하고 글쓰고 노력하는 거다. 우리가 다독, 다작, 다상량을 하는 이유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운을 몰라보고 지나치지 않기 위해서다.

하나는 명확하다.지금 이순간 멈춘다면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운을 만날 기회는 100% 확률로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의지를 가지고 간다. 수 많은 기회와 행운이 저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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