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조건과 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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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과 눈마새, 전독시와 같은 작품을 이야기할 때 ‘반지의 제왕’이 단지 먼저 나왔기 때문에 명작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는 것 같은데, 꼭 그것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클래식은 수백년 넘게 음악이 작곡되고 있지만
베토벤 ‘합창교향곡’ 비발디 ‘사계’가 명곡인 이유는 아직도 연주되고 있기 때문임이 가장 큰 이유다.
즉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은 곡이라는 점이다.

먼저 만들어졌기 때문에 명작이 된다면 베르디의 오페라 수십 편 중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오페라가 명작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30편의 베르디 오페라 중에서도 중간중간 만들어진
리골레토, 라트라비아타, 아이다 등 몇 곡만이 명곡으로 남았다.
‘시트펠리오’ ‘롬바르디아인’ 같은 오페라는 잊혀졌기에 명곡이 아닌 것이다.
또한 베르디 전후로 오페라 작곡가는 많았지만 베르디보다 명곡을 못 만들었다.
베르디가 오페라를 처음 작곡해서 명곡이 아니라,
베르디의 노래가 안 잊혀졌기에 명곡인 것이다.

박경리 ‘토지’, 김훈 ‘남한산성’, 지갑송 ‘소설속 엑스트라’를
십 년, 이십 년, 백 년 뒤로 기준을 잡아보자.
이십 년 뒤라면 ‘남한산성’의 매출과 ‘소설속 엑스트라’의 매출액은 누가 더 많을까?
백 년 뒤에도 판매되는 작품은 무엇일까?

‘반지의 제왕’이 최초의 판타지였을까?
그 소설은 바그너의 ‘리벨룽의 반지’를 카피한 작품인데?
난장이, 절대반지, 쓰면 사람 눈에 안보이는 물건, 황금을 독차지한 무서운 용까지.
우리가 6부작에서 핵심 주제로 보았던 내용 대부분이 리벨룽의 반지에서 차용한 소재다.
물론 리벨룽의 반지도 고대신화에서 차용한 것이고.

오크(=고블린)을 톨킨이 창조했고, 톨킨의 판타지의 창시자라고?
반지의 제왕이 쓰여진 것이 1954년.
고블린이 책 제목으로 등장한 것이 1868년.
톨킨이 ‘반지의 제왕’ 무대를 구상할 때 참고한 작품이
백 년 전 작품인 ‘공주와 고블린’이다.
판타지, 드래곤, 난쟁이 등등 대부분 톨킨 이전의 판타지 작가들이 쓰던 것들이다.
‘반지의 제왕’은 걸작이지 최초의 판타지소설이 아니다. 또한 최초로 판타지소설 요소를 정립한 작품도 아니다.

다만 독자들에게 ‘공주와 고블린’은 잊혀졌고,
‘반지의 제왕’은 아직 안 잊혀졌고, 이것이 오늘날 명작의 서열을 만든 것이다.

그럼 베토벤, 비발디의 노래나 세익스피어, 톨킨의 작품이
수 백 년 동안 안 잊혀지고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너 넓은 시공간의 공감영역을 지닌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민족에게 사랑받는 것이다.

그 시간의 차이가 명작의 조건인 동시에 서열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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