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꾸역꾸역. 손에 가시가 돋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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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 자신의 폼으로 쓴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작년 말에 쓴 [귀검살신 무림귀환]은 웹소설의 형식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웹소설이었지만 내 폼으로 쓴 소설이다.

초반12화 중에서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 화가 5화(나머지도 주인공은 잠깐 등장. 스토리는 조연들이 이끌고 감.)
후반부 클라이막스인 180화부터는 무려 8화 연속 주인공 콧배기도 등장하지 않고 조연으로만 8화가 진행.(200화 완결이었음)

초반부는 물론 클라이막스까지 주인공은 얼굴조차 안 비치는 이런 소설을 왜 썼냐고 묻는다면... 내게 필요했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조연에 대한 서사나 캐릭터성을 만드는 법을 익히고자 쓴 작품이다.

당연히 성적은 처참했지만 각오했던 것이라 힘들지도 않았고, 개인적으로는 만족했던 작품이다. 성적 빼고는 적지 않은 성과를 얻었던 작품이다.

그리고 올해도 이것저것 내가 정한 목표대로, 내 폼대로 써야 했는데, 그게 안 된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역시 환경이다.

내 개인은 상당히 통제가 가능한 편이다. 20시간 연속 강의를 할 때도 목요일밤에 와서 밤새 6편을 써서 금요일에는 금토일분 6편을 보내주기를 몇 달을 했을 정도로, 자기 시간을 통제하는 일에 능한 편이다. 아무리 피곤해도 내가 정한 스케줄 속에서 진행한다면 목표를 채우고 잠을 자는 편이다.

하지만 외부변수, 특히 가족과 관련된 외부변수에는 대책이 없다. 다 세워둔 계획이 엉망으로 흩어져버린다.

어제만 해도 하루 치 비축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새벽부터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가 온다. 태풍에 비까지 오는 상황에서 발생한 심각한 사태. 결국 빗길을 달려 열쇠 복사하고, 음식 사서 냉장고에 넣고, 청소하고, 건강보험 지사 방문해서 장기요양 판정신청하고 다시 빗길을 달려 도착하니 오후 5시. 마감 1시간 전. 비축분이 아니라 마감도 어려운 상황.

빗길 운전과 스트레스로 정말 피곤했고, 정말 하루쯤 휴재하고 싶지만 졸음을 참아가면서 꾸역꾸역 씁니다.

이게 어제 하루의 일이 아니다. 반 년 째 반복되는 일이다.

이번주 내내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은 상태에서 허리를 세운 상태로(등이나 목받침이 없는 의자라) 잠들다가 다시 깨기를 반복했다. 정말 눈 떠보면 10분 지나있고, 다시 눈 떠보면 10분 지나있고.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허리를 편 상태에서 모니터를 보다가 잤다 깼다를 반복하는 것이다. 깨면 억지로 정신을 차려가면서 글씨가 안 보이는 모니터에 글씨를 채워 넣는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타자 치는 도중에 잠이 들고.

6시 것 마감 후에 두 편을 더 써야 했다. 밤 11시 59분에 겨우 마감을 한다.(11시부터 30분 정도는 졸면서 보낸 시간) 1분이 지나면 날짜가 달라져서 휴재인 날이 되니 12시 이전에 올리고는 쓰러졌다가, 아침 6시에 일어난다.

외부 변수로 하루가 날아가면 만회하는 데는 일주일이 걸린다. 다음날도 꽉 찬 일정이기 때문에 무리를 해서 몇 시간을 짜내야 한다. 오늘 하루 날리면 오늘+내일 이틀치 일이 생겨버리고. 날아간 하루를 쪼개서 일주일에 배분해야 복구가 된다.

그렇게 겨우 스케줄과 피로를 복귀하면 또 일이 생기고... 최근 6개월 내내 반복이다.

시작은 3월부터였다. 그리고 7월에 또 한 명이. 한 명도 벅찬데 두 명이나. 차병원을 비롯해 중앙병원, 신경과 등등 병원을 오가면서 소비되는 시간이 내 스케줄을 모두 망가트린다. 내 통제 영역 바깥이라 방법이 없다.

일정 다 짜놓고 야심차게 ‘이번 주부터는 제대로...’라고 해봐야 갑작스런 호출에 또 엉망진창. 정말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된다.

3월에 시작한 [뒤집기부터 무공천재]도 5월 공모전으로 시작한 [금의위, 문주 되다]도 난항에 난항을 거듭한다. 제 폼대로 글을 쓸 수 없으니 그게 글에 그대로 반영이 된다.

그럼에도 휴재는 하루도 하지 않았다. 집에 올 시간이 안 되면 근처 롯데리아에서 햄버거 시키고(3월부터는 점심 제 때 못 먹는 경우 많았다.) 버거 먹으면서 스마트폰으로 써서 6시 마감 지키는 등. 악전고투의 날이 몇 달 째 진행되고 있다.

나로서는 휴재 사유가 넘치지만 독자들은 그 사정을 모르니. 그리고 정말 1년에 한 번이라면 모를까 수시로 호출되니 그때마다 휴재를 하면 며칠 간격으로 휴재가 나오게 된다.

그래서 꾸역꾸역 씁니다. 병원에서, 카페에서,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토막시간을 이용해서 글을 써서 올린다.

그 와중에 계획대로 두 편 모두 유료화는 한다.(결국 전환 100도 안 나오는 처참한 성적. ^^)

요즘은 정말 글을 꾸역꾸역 쓴다. 졸면서 쓰고, 자다가 깨다 반복하면서 쓴다. 그래도 휴재 없이 꾸역꾸역 쓴다. 폼이 무너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의지의 무너짐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선의 환경에서 글을 쓰면 좋겠지만, 실제 삶은 그런 환경을 잘 허락하지 않다. 좋은 작업실, 여유 있는 집필 시간... 모두가 바라는 바다. 하지만 그런 것이 없다는 이유로 나 스스로 글쓰기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내 글의 상당수는 악조건에서 쓴 글이다. 출근길 달리는 지하철에서 쓰거나, 휴식시간 10분을 6번 모아서 60분을 마련하고 점심시간을 모아서 그날 마감한 글들이 많다.(특히 최근 반년은 그런 글이 너무 많았다. 스케줄이 다 망가져서.)

나는 작가가 된 이상 키보드를 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꾸역꾸역 글쓰기. 힘들다. 하지만 즐겁다.

스마트폰 자판을 눌러서 글을 올릴 수 있는 환경이 얼마나 대단한 축복인지를 안다. PC가 없는 상황에서도 쉬는 시간 10분을 이용해서 부족한 시간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누구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글을 쓸 수 있는 환경. 작가에게 이것보다 큰 축복은 없다. 이것보다 좋은 환경은 없다.

그러니 오늘도 꾸역꾸역 글을 쓴다.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앞으로 나갈 뿐이다.

이 또한 지나가는 과정 중의 하나라 생각한다. 불방일 정진, 게으름 없이 정진해야 한다고 믿다.

안중근 의사가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명심보감의 글을 뤼순감옥에서 썼는데, 작가라면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손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구절로 바꾸어도 될 명문구라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글쓰기 힘든 환경과 시절이 있다. 그래도 써야 한다. 손가락이 움직이고, 스마트폰이 있는 한 글을 쓸 수 있으니까.

글을 쓴다. 손에 가시가 돋지 않도록, 오늘 하루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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