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행정장관은 지부(知府)로 정4품이 맡았는데, 건륭18년(1753)년에 개정되면서 지부의 품계가 종4품으로 변경되었다.
청나라 옹정제 때는 전국에 184부가 있었다. 광서25년이 되면 순천부를 제외하고도 직예성 10부, 봉천부윤 2부, 길림 2부, 산동성 10부, 산서성 9부, 하남성 9부, 강소성 8부, 안휘성 8부, 강서성 13부, 복건성 9부, 절강성 11부, 호북성 10부, 호남성 9부, 섬서성 7부, 감숙성 8부, 신강성 6부, 사천성 12부, 광동성 9부, 광서성 11부, 운남성 14부, 귀주성 12부 등 200여개의 부가 존재했다.
청나라 초기에 지부(知府)는 동지나 통판을 부의 각지로 파견보내기도 했는데, 이때 파견 나간 그들이 관리하던 행정구역을 청(廳)이라 불렀다. 청(廳)은 부 또는 주와 비슷한 행정구역인데, 특징은 소수민족 지역이나 전략적 요충지에 설치된 지방행정단위라는 점이다. 즉 주로 변방 국경지대에 특수하게 만들어진 행정구역인 것이다.
청은 직예청(直隷廳)과 산청(散廳)의 종류로 구분된다. 직예청은 포정사사에 직속되는 청이다. 이 경우 청의 지위는 부나 직예주(直隷州)와 비슷하다. 산청은 일반적으로 부(府)에 속하거나 도(道)에 속한다.
청의 행정장관은 동지(同知)나 통판(通判)이 맡는다. 동지는 정5품이고, 통판은 정6품이다. 직예청과 산청이나 품계는 동일하다. 이후 청의 단위에 대한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행정장관은 동지나 통판이라고 불렀는데, 부(府)의 동지나 통판과는 달랐다. 광서 말년에는 전국에 직예청과 산청의 수가 100여개가 넘었다.
한국을 예로 들면 도청(시청), 군청(구청), 면사무소(동사무소, 주민센터)까지 행정관청이 들어선다.
서울시의 경우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12통 3반이라고, ‘통’ ‘반’이라는 하위 단위가 있지만 통사무소, 반사무소라는 관청은 없다. 그냥 마을 주민 중에서 한 명을 ‘통장’ ‘반장’으로 임명해서 동사무소의 부탁을 받고 일하는 반공무원 형태로 일을 한다. 지방의 경우 옛날에 주소를 쓸 때는 ‘XX도 XX군 XX면 XX리 XX부락’이라고 ‘리’ ‘부락’ 단위까지 썼다. 하지만 주민 중 한 명을 ‘이장’으로 임명해서 일을 시키는 것이고, 리사무서나 부락사무서라는 관청은 없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동사무소(주민센터), 면사무소가 행정의 최소단위, 초급행정단위가 되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현까지 관청이 개설되기 때문에 현을 행정의 최하단위로 보는 것이다.
그 이하인 향, 리, 정은 한국의 ‘통, 반’ ‘리, 부락’과 같은 개념이다.
청나라 명나라 체제에서 현은 일반적으로 부(府)와 직예청(直隷廳), 또는 도(道)와 직예청에 종속되었다. 흑룡강성 대통현과 탕원현은 우흥동도에 속했고, 봉천성 안동현, 관전현은 봉황직예청에 속했다. 청나라 말기에는 전국에 1,300개가 넘는 현이 있었다.
향은 보통 마을이라고 부르는 집단촌락의 단위라고 보면 된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가구와 가구 또는 집과 집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생활공동체의 단위가 촌락이다.
보통 ‘마을, 동네, 촌(村), 촌락(村落), 동(洞), 부락(部落)’이라고 부르는 단위가 여기에 속한다. 따라서 향(=촌)보다 작은 단위는 씨족 사회나 아주 좁은 지역으로 좁혀지게 된다.
시골을 가리키는 낱말인 '향촌‘이라는 말이 이 행정구역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향을 구성하는 단위로 1개의 향에 10~20개 정도의 리가 속해 있었다. 리의 가구수는 몇 십 가구 정도다. 산 남쪽에 50가구 정도가 모여 산다면 ‘남산리’라고 부르는 식이다.
청나라 때 리(里)의 단위가 권(图)으로 바뀐다.
청나라 때는 정(丁) 대신 갑(甲)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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